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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주말

[후지산 캠핑] 필름카메라로 담은 후지산 풍경, nikon L35AF

백패킹을 다니다 보면 들숨날숨에 집중하며 걷고, 풍경을 감상하고, 박지 정비 후에 멍하니 하늘과 산을(혹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힐링이 별게 아니구나 싶다.

인류애가 박살 나기 일보직전인 직장인의 마음은 다 비슷한지 함께 하는 친구들도 별 말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다가 뱃골에서 신호가 오면 한 자리에 모여 끊임없는 식사를 한다.

쇼펜하우어가 그랬지.

“삶이 괴롭다면 그냥 평소보다 더 많이 먹고 평소보다 더 많이 자라.”

우리의 백패킹은 그렇게 장황한 대화 없이 평소보다 더 많이 먹고, 일찍 잠에 드는 쇼펜하우어식 휴식이 컨셉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하이킹을 동반한 백패킹을 몇 번 다녀보면서 자연스럽게 디지털디톡스가 되는 것이 느껴졌다. 사진을 찍으려고 폰을 몇 번이고 꺼내면서 메신저, SNS확인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데 카메라가 있으면 이마저도 꺼내지 않겠구나 싶어서 카메라를 하나 장만하기로 했다.

 

하이킹에 적합한 간단한 스냅카메라를 찾다가, 아예 감성을 쫓고 싶어서 필름카메라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니콘 L35AF.

83년생인 이 카메라는 니콘에서 만든 첫 자동초점 컴팩트 필름카메라다. 무려 41년 된 이 중고카메라의 성능이 의심되었지만 한 컬렉터 분께 적당한 가격으로 구할 수 있었다.


 

우리의 다섯 번째 백패킹인 후지산 후모톳바라 캠핑장에 이 카메라를 들고 갔다.

3박 4일 일정 중에 이틀이나 비가 와서 흐린 날씨에 후지산을 못 보고 캠핑도 취소해야 할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우리의 간절한 마음을 하늘에서 들었는지 모두 하고 왔다.

꿈의 대교를 건너 유턴하는 그 순간에 구름이 살짝 걷혀 후지산 어마어마한 자태를 발견하고 운전 중에 호들갑을 떨었던 그 순간이 처음 후지산을 목격한 순간이었다.

차를 대충 주차하고 대교로 달려와서 다시 구름이 걷히길 한동안 기다리며 후지산에 눈이 고정되었다.

 

꿈의 대교

 

 

그렇게 감질맛나는 후지산을 보고 나니 잔뜩 부푼 희망을 안고 캠핑장으로 향했다.

후모톳바라 캠핑장은 게나시 산을 등지고 후지산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는 곳이어서 산 안개가 많이 떠있어 까마득한 안개를 뚫고서야 도착을 했다. 그 안개를 뚫는 동안 희망이 아주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기 때문에 비가 안 오니까 캠핑은 할 수 있다는 마음만으로 향하게 됐다.

 

후모톳바라 입구
게나시 산과 캠핑장 풍경

 

 

역시 캠핑장에 도착하니 후지산은 어디에 있는 건지 가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뿌옇게 시야가 가려져있었다. 궂은 날씨였는데도 꽤 많은 캠퍼들이 여기 저리 자리를 잡고 있었다.

구글지도로 후지산 방향을 확인하고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자리를 잡고 생선을 구우면서 사케를 몇 잔 들이켜다 보니 구름이 조금씩 걷히면서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오후 5시가 좀 지나고 하늘이 맑아지면서 정석 같은 풍경을 볼 수 있었다.

 

 

2024.04.28 - [분류 전체보기] - [첫 해외 캠핑, 후지산 백패킹 여행] PART.3 후모톳바라 캠핑장(후지산 일몰)

 

[첫 해외 캠핑, 후지산 백패킹 여행] PART.3 후모톳바라 캠핑장(후지산 일몰)

후모톳바라 캠핑장 체크인 안개를 뚫고 캠핑장에 도착했다.후모톳바라 입구에서 예약번호를 알려줬다. 캠핑장 입장료는 성인 1000엔, 아동 500엔, 차량 2000엔이고, 우리는 성인3명에 차한대여서 5

master-otter.tistory.com

 

 

 

 

해가 지고 날씨가 쌀쌀해져서 캠핑장 입구 쪽에 있는 가나야마 키친으로 들어갔다. 밤 9시까지 오뎅을 파는 작은 가게였는데 주인장과 직원 한 명이 분주히 장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것저것 골라 담으며 생맥주 세 잔을 시켜 자리를 잡았다.

뜨끈한 국물에 시원한 맥주로 온탕 냉탕 왔다 갔다 하니 기분이 좋았다. 가게 안에 사람이 가득 차고 소란스럽다고 느낄 때쯤 우리 식사가 끝나 잘 준비를 하러 텐트로 돌아갔다.

 

 

 

다음 날은 화창하게 날씨가 개어서 새벽에 일출을 감상하다가 일찍부터 철수준비를 시작했다. 주말이라 차가 많이 막힐 것을 예상하고 가와구치 호수에 들러서 아침을 해결하고 공항으로 향하기로 했다.

가와구치 호수는 후지산을 오르는 케이블카가 있는 유명한 관광지여서 아침부터 관광객들이 많았다. 우리는 관광지 반대편에 있는 호수와 산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미사카미치도로 쪽으로 가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쪽엔 관광객이 없는 조용한 분위기여서 호숫가에서 낚시를 하는 현지인들과 조깅을 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가와구치 호수

 

 


 

여행 다녀와서 한 달이 지나 필름 현상을 맡겼다.

필름은 한 롤에 36장을 찍을 수 있어서 대충 찍긴 너무 아깝다. 뷰파인더를 한참 보다가 그 상자 안에 마음에 드는 장면이 담기는지 고민하면서 어쩔 땐 그냥 카메라를 툭 내려놓기도 하고, 갑자기 급하게 집어 들어 큰 고민 없이 찍은 사진에서 운 좋게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얻어걸리기도 했다.

첫 현상을 맡긴 사진들을 보니 40년 된 골동품 카메라가 안겨주는 따뜻하고 편안한 색감과 노이즈가 고맙게 느껴졌다.

꿈의 대교에서 간절히 후지산이 등장하길 바라며 그 실루엣만 골똘히 바라보던 우리의 마음이 사진에도 담겨있었다. 실내에서 플래시 터지는 것을 보려고 대충 셔터버튼을 눌렀던 오뎅바 테이블 사진도 화목난로가 따뜻하게 데워주었던 식당 안의 공기가 담겨있는 것 같다. 

평소에 찍는 카메라 어플로도 필름카메라 느낌이 나는 필터로 충분히 흉내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큰 기대가 없었다. 하지만 현상스캔본을 받고 한장 한장 살펴보니 그 순간의 분위기와 내 감정들이 사진 안에 다 담겨있는 것 같아서 사뭇 감동적이었다. 

다음 출사도 많이 기대가 된다.

 

 

카메라: 니콘 L35AF
필름: 코닥 울트라맥스 ISO 400 36롤 컬러네거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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